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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필적 확인 문구, 아름다움은 물론 '이 글자' 있어야 뽑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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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필적 확인 문구, 아름다움은 물론 '이 글자' 있어야 뽑힌다

입력
2023.11.19 16:17
수정
2023.11.1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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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광모 시인의 시 '가장 넓은 길'
50만 수험생에 희망과 감동 전해

2024학년도 수학능력평가시험의 필적 확인 문구. 연합뉴스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지난 16일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50만4,000여 명의 응시생들이 시험 시작 전 일제히 적은 문장이다. 양광모(60) 시인의 시 '가장 넓은 길'의 한 구절로, 필적 확인 문구에 사용됐다.

필적 확인 문구는 응시생들이 답안지의 필적 확인란에 직접 적어야 하는 일종의 본인 확인 절차다. 대규모 부정행위가 적발됐던 2005학년도 수능 이후 도입됐다. 매년 달라지는 이 문구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면서도 수험생에게 희망과 감동, 위로를 줄 수 있는 시의 구절이 사용된다.

올해 이 필적 확인 문구에 가슴이 뭉클했다는 응시생들도 적지 않았다. 한 온라인 수험생 커뮤니티에는 "올해 문구도 뭉클하다" "감동이다" "울컥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단단한 느낌"이라며 응원이 됐다는 글들이 적지 않다.

2013년 이 시를 쓴 양광모 시인은 MBC에 "저는 대학을 4수 했다. 실패와 좌절을 좀 많이 겪었는데 인생이 그야말로 전쟁 같더라"며 수험생들에게 "인생은 정말 모르는 거다.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떤 행운이 어떤 축복이 찾아올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는 말을 전했다.

양광모 시인. MBC 보도 캡처

필적 확인 문구에는 당시 우리의 사회상이 반영돼 있다는 해석도 있다. 대규모 부정행위 적발 후 필적 확인 문구가 처음 도입된 2005년 6월 모의평가의 문구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윤동주 '서시')이었다. 포항 지진으로 시험이 한 주 연기됐던 2018학년도에는 '큰 바다 넓은 하늘을 우리는 가졌노라'(김영랑 ‘바다로 가자’), 이태원 참사로 우리 사회가 상실의 아픔을 겪었던 지난해에는 '나의 꿈은 맑은 바람이 되어'(한용운 '나의 꿈')로 수험생들의 마음을 다독였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1교시 국어영역 시험지에 필적 확인 문구인 '넓은 하늘로의 비상을 꿈꾸며'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지금까지 가장 많이 인용된 시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로 총 3차례 나왔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필적 확인 문구는 12~19자로 필체가 드러나는 자음인 ‘ㄹ’ ‘ㅁ’ ‘ㅂ’ 중 2가지 이상이 들어가는 문구로 선정한다.

< 역대 수능 필적 확인 문구 >

2006학년도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 빛 (정지용 ‘향수’)
2007학년도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정지용 ‘향수’)
2008학년도 손금에 맑은 강물이 흐르고 (윤동주 ‘소년’)
2009학년도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윤동주 ‘별 헤는 밤’)
2010학년도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2011학년도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고 넓어진다 (정채봉 ‘첫마음’)
2012학년도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황동규 ‘즐거운 편지’)
2013학년도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이며 (정한모 ‘가을에')
2014학년도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박정만 ‘작은 연가’)
2015학년도 햇살도 둥글둥글하게 뭉치는 맑은 날 (문태준 ‘돌의 배’)
2016학년도 넓음과 깊음을 가슴에 채우며 (주요한 ‘청년이여 노래하라‘)
2017학년도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 (정지용 '향수')
2018학년도 큰 바다 넓은 하늘을 우리는 가졌노라 (김영랑 ‘바다로 가자’)
2019학년도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김남조 ‘편지’)
2020학년도 너무 맑고 초롱한 그중 하나 별이여 (박두진 ‘별밭에 누워’)
2021학년도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그대 한 사람 (나태주 ‘들길을 걸으며')
2022학년도 넓은 하늘로의 비상을 꿈꾸며 (이해인 ‘작은 노래 2’)
2023학년도 나의 꿈은 맑은 바람이 되어서 (한용운 '나의 꿈')
2024학년도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양광모 '가장 넓은 길')

< 가장 넓은 길 >

살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원망하지 말고 기다려라

눈이 덮였다고
길이 없어진 것이 아니요
어둠에 묻혔다고
길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묵묵히 빗자루를 들고
눈을 치우다 보면
새벽과 함께
길이 나타날 것이다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다

양광모, <꽃이 그늘을 아파하랴>, 이을출판사, 2023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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