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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주인양자(做人樣子)

입력
2024.02.05 04:30
27면
0 0

고전

편집자주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

충남 논산 연산면 양지서당에서 지난달 8일 학생들이 유복엽 큰훈장에게 '사자소학(四子小學)을 배우고 있다. 뉴스1

충남 논산 연산면 양지서당에서 지난달 8일 학생들이 유복엽 큰훈장에게 '사자소학(四子小學)을 배우고 있다. 뉴스1

"처음 배우는 사람은 먼저 '소학'을 보아야 한다. 이것은 사람을 만드는 틀이다." '주자어류'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을 만드는 틀, 한자로는 주인양자(做人樣子)다. '주'는 만들다. '인'은 사람. '양자'는 틀이다. 밀가루 반죽을 사람 모양 틀로 찍어내어 '진저브레드맨' 쿠키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소학'은 성리학적 인간을 만들어내는 틀이었다.

애당초 '소학'은 어린이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기 위한 책이었다. 일상생활의 모든 행동에 세세한 규칙을 마련하고 이를 따르도록 요구한다. "닭이 울면 일어나서 세수하고 양치하며 옷 입고 이불 개고 청소한다." "아랫목에 앉지 않고 정중앙에 앉지 않고 길 가운데로 가지 않고 문 가운데 서지 않는다." 시시콜콜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소학'의 저자 주희는 신분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이 책의 내용을 충실히 따른다면 성리학적 사회질서를 확립해 이상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고 보았다.

주희를 신봉한 조선 학자들도 '소학'을 중시했다. 점필재 김종직은 주자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제자가 되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소학'을 읽으라고 했다. 다 큰 어른에게 어린애들이나 읽는 책을 공부하라니. 반발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군말 없이 따른 사람도 있었다. 김종직의 수제자 한훤당 김굉필이었다.

김굉필은 스무 살에 김종직 문하에 들어갔다. 스승의 가르침대로 충실히 '소학'을 읽었다. 10년이 지나 서른 살이 돼서도 오로지 '소학'뿐이었다. 누군가 나랏일을 물으면 이렇게 답했다. "'소학'이나 읽는 어린아이가 무엇을 알겠소." '소학'이나 읽는 어린아이, 소학동자(小學童子)가 그의 별명이었다.

과거의 교육은 모두 사람 만드는 틀로 사람을 찍어내는 것이었다. 성리학적 도덕군자를 찍어내는 틀이 시대에 뒤떨어지자 근대 국가의 국민을 찍어내는 틀로 바뀌었다. 근대적 교육제도는 산업사회의 역군으로 국가 발전에 기여할 국민을 찍어내는 틀이었다. 이제는 그 틀마저 시대에 뒤떨어졌다. 그렇다고 교육부가 추진하는 '무전공 입학'이 그 대안인지는 의심스럽다.

창의적, 융합적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취지는 좋다. 100명의 학생이 있다면 100개의 전공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무전공 제도는 인문학을 비롯한 기초 학문을 무너뜨리고 틀에 박힌 취업형 인재, 시험형 인재를 대량생산할 뿐이다. 입시형 인재를 찍어내는 틀로 전락한 초중고처럼 대학마저 사람을 찍어내는 틀로 만들고야 말 것인가.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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