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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함께 칼 찔린 아비에게 '취조'하듯 질문 세례… 가슴을 후벼 판 수사기관

입력
2024.02.07 04: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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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피해자: ⑦피해자에 무신경한 수사기관]
딸 남자친구 범행으로 딸 사망, 남편은 중상
경찰관, 중환자실 갓 나온 남편에 질문 반복
"우리가 유죄 입증에 필요한 증거품인가요?"

편집자주

대한민국 경찰은 잘 잡습니다. 그리고 빨리 잡습니다. CCTV를 뒤지고, 핸드폰을 추적하며, 교통카드·신용카드 기록을 따라가 기어코 잡아내고야 맙니다. 그러나 이렇게 수사의 신속성과 효율성만 강조하다 보니 범죄 피해자나 가족에게 마땅히 해야 할 배려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때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이 기사에서 소개하는 정윤희씨 가족 사건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범죄 피해자인 윤희씨 가족은 어쩌다 수사기관의 행태에 치를 떨 정도로, 큰 불신감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윤희씨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시죠.

정윤희(가명)씨가 지난해 12월 29일 경기 한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던 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정다빈 기자

정윤희(가명)씨가 지난해 12월 29일 경기 한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던 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정다빈 기자

2020년 5월 어느 주말, 정윤희(가명·62)씨는 남편과 딸을 집에 두고 고향에 가 있었다. 친한 친구 딸 결혼식이 있던 날이다. 식이 늦게 끝나 고향 숙소에 하루 묵기로 했고, 다음 날 일찍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해놓곤 잠들었다.

서너 시간 흘렀을까. 새벽에 울린 벨소리에 휴대폰을 들었다. "따님 남자친구가" 어쩌고저쩌고하는 낯선 남자 목소리가 들려 보이스피싱인가 싶어 끊었다. 세 번을 끊었지만 벨소리는 집요하게 울렸고, 윤희씨는 전화를 건 남자가 경찰관임을 알게 됐다. "김OO씨 부인 아니세요? 경찰입니다. 남편이 크게 다치셨어요."

혼비백산해 경찰관이 알려준 병원으로 달려갔다. 사경을 헤매는 남편의 응급수술 동의서를 쓰고 나니 더한 청천벽력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을 찌른 괴한이 둘째 딸 예지(가명·당시 29세)도 찔러 이미 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거짓말 같은 얘기에 영안실로 달려갔다. 딸은 정말로 거기 누워있었다. 동네에서 가장 활기차고 환하게 웃던, 자타공인 '에너자이저' 윤희씨는 딸을 잃은 날 웃음도 잃었다.

경찰이 남편을 찾아왔다, 그런데…

지난달 29일 한국일보와 만나 그 얘기를 어렵게 꺼낸 윤희씨는 인터뷰 내내 손에서 휴지를 놓을 수 없었다. '딸'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눈물을 훔치기 바빴다.

"가장 힘들 때가 언제였나요?" 그 질문에 윤희씨는 눈을 부릅뜨며 즉답했다. 뜻밖에도, 그는 '경찰 조사 때'라고 말했다. 딸의 얼굴을 봐야 했던 순간이 아니었다. "남편이 수술받고 중환자실에 있다가 겨우 정신만 차리고 일반 병실로 내려왔을 때죠. 경찰관이 찾아와선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남편에게 두 시간 넘게 질문을 하는데, 어찌나 화가 나던지."

경찰이 남편에게 캐물은 건 남편이 그날 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최초 신고자였기 때문이다. 남편은 사건 당일 자정 무렵 둘째가 누군가와 다투는 소리를 듣고 안방에서 나왔다. 딸은 이미 많은 피를 흘려 의식을 잃은 뒤였다. 딸의 남자친구, 그러니까 가해자 얼굴을 처음 본 것도 그날이었다. 김씨는 처음에 강도가 든 줄 알고 경찰에 신고했다. 가해자가 딸 남자친구란 건 나중에 안 사실이다.

아직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린 그에게 경찰관은 질문을 퍼부었다. "범인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를 빠져나갈 때까지 시간이 너무 길어요. 혹시 아는 게 있어요?" 희미한 기억을 살리려 사력을 다하는 남편 옆에서 윤희씨는 속이 문드러지다가 결국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남편도 그 당시 이미 피를 많이 흘려 정신이 혼미했대요. 왜 우리가 취조를 당해야 하는 거죠? 왜 이런 게 피해자의 몫이죠?"

정윤희씨가 지난해 12월 29일 경기 한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 중 두 손을 맞잡고 있다. 정다빈 기자

정윤희씨가 지난해 12월 29일 경기 한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 중 두 손을 맞잡고 있다. 정다빈 기자

수사기관을 향한 불신은 사법체계를 향한 믿음까지도 흔들었다. 윤희씨는 1심 재판이 시작되자 증인으로 와달라는 검찰의 요청도 거부했단다. "여기서도 말해야 되고, 저기서도 말해야 되고. 그 자체가 스트레스고 트라우마를 키우잖아요." 그를 대신해 첫째 사위가 처제 재판을 꼬박 챙겼다. "우리 사위가, 그놈(가해자)이 재판에 올 때마다 살이 통통하게 쪄서 나오는 모습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욕을 하다가 법정 경위에게 끌려 나간 적도 있대요." 재판을 먼발치에서만 지켜보던 윤희씨도 가해자가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은 뒤 항소심 재판부에 엄벌 탄원서를 두 번 냈다. 그는 "형량 늘리려고 피해자가 탄원서를 받으러 여기저기 다녀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한탄했다.

회복은 오직 피해자 몫

피해자와 유족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고 사무적으로만 대하는 태도 때문에 수사·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은 커져만 갔다. "피해자들이 어떻게 더 좋은 방향으로 회복할 수 있겠다는 고민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경찰관이나 검사가 정말 그런 마음을 먹진 않았겠지만, 가족 입장에선 수사기관이 유족을 그저 가해자 유죄 입증을 이끌 '증거품'으로 대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단다.

그래서 그들은 수사기관 신세를 지지 않고 '셀프 회복'을 택했다. 심각한 불안 증세를 호소하는 윤희씨에게 담당 경찰관은 경찰서와 연계된 센터에서 심리상담을 지원한다고 안내했다. 하지만 윤희씨는 두 번 만에 상담을 그만뒀다. "사건을 떠올리기도 힘든데 자꾸 똑같은 얘기를 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대신 정신과로 향했다. 수면제를 처방받고 한의원에서 약을 지어먹으면서 차츰 극복했다. 정부 지원은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유족이자 피해 당사자인 남편에게도 지원은 박했다. 남편 앞으론 1,000만 원 남짓 수술비가 나왔다. 하지만 넉 달간 침상에 누워있는 동안 까맣게 잊은 남편의 임플란트 치료를 재개하는 비용이며, 근육이 빠지며 악화된 망막 질환을 치료하는 건 모두 알아서 부담해야 했다. "지금은 시력을 거의 잃어 눈앞 반찬통도 분간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한다"고 윤희씨는 안타까워했다. 공공기관에 다니던 부부는 모두 일을 그만두고 지금은 국민연금으로 근근이 생활 중이다.

그나마 재판과정 등 법률 보조는 변호사인 조카가 큰 도움이 됐다. "조카가 없었다면 누가 우릴 이렇게 도울까요. 경찰이나 검찰이나 '생활비는 어떻게 대냐'며 진심 어린 걱정을 해준 적도 없었어요."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29일 경기 과천시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린 '제16회 범죄피해자 인권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법무부 제공

지난해 11월 29일 경기 과천시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린 '제16회 범죄피해자 인권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법무부 제공

딸이 떠난 지 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가족은 여전히 딸 이야기를 꺼린다. 이따금 들리는 범죄 소식이 무서워 뉴스를 보지 않은 지 오래다. "손녀가 이모(예지)를 찾아요. 그럼 예지 생각에 차에 들어가 한참 울다가 들어가요." 윤희씨는 술로 버티던 밤에서 1년 만에 탈출했지만 여전히 사건 전으로 돌아가지 못한 듯했다.

그나마 지난해 3월부터 윤희씨는 바깥 활동을 시작했다. 조카가 '범죄피해자센터'를 소개해주면서다. 이 센터에선 범죄 피해자들이 자조모임을 꾸려 갖가지 활동을 한다. 그중 텃밭을 가꾸는 활동에 윤희씨는 푹 빠졌다. 남편 간병으로 바쁜 나날이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 바람을 쐬러 나섰다. 수확을 하는 날이면 다른 피해자들과도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기운을 차렸다. 지난해 11월엔 이 센터를 대표해 '범죄피해자 인권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약자 상대 범죄는 근절돼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그는 사건 이후 처음으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며 언론 앞에 나섰다고 했다. 아마도 이 외침을 기사에 꼭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일단은 범죄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해요. 일어난 뒤엔 저를 보호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자기들 필요한 것만 하고 끝이죠. 형량을 늘리고 정말 처벌이 강하게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강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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