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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소녀만 쏙 빼고 메달…아일랜드 체조대회서 벌어진 일

2023.09.25 18:00
#. 흑인 소녀가 우쭐한 표정으로 자신의 목에 메달이 걸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시상자는 이 소녀만 쏙 뺐다. 시상대에 나란히 선 백인 소녀들에게만 메달을 걸어줬다. 투명인간 취급을 당한 흑인 소녀는 주변을 둘러보지만 누구도 상황을 바로잡지 않는다. 지난해 3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체조대회 '짐스타트(GymSTART)' 시상식에서 벌어진 일이다. 노골적 인종차별을 포착한 이 영상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뒤늦게 전 세계로 퍼졌다. 대회를 주관한 아일랜드체조협회는 집중포화를 맞았다. 그러나 18개월 만에 내놓은 뒤늦은 사과는 '못쓴 사과문'의 정석이었다. 24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아일랜드 아이리시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소녀의 어머니는 "딸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시상식에서 무시당했다"며 협회의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소녀는 당시 대회의 유일한 흑인 참가자였다. 소녀의 가족은 협회가 스포츠계에 만연한 구조적 인종차별을 인정하길 거부하고 시상자와 소녀의 개인적 문제로 축소했다고 여긴다. 문제가 제기된 이후에도 유색인종 선수 보호와 차별 금지 약속을 비롯한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협회는 "시상자는 이번 일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정했으며, 다만 고의가 아니었다고 했다"며 "실수를 인지하자마자 즉시 바로잡았다"고 밝혔다. 경기장을 떠나기 전 소녀에게 메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지난 8월 스포츠 분쟁 조정 기구를 통한 중재에 합의했으니 해결됐다"는 게 협회의 기본 입장이었다. 가족들은 '나 홀로 싸움'을 이어갔다. 스포츠계 인종차별에 맞서 온 활동가 켄 맥큐는 "아일랜드 체육계와 정치권의 무관심이 소녀를 보호하지도, 인종차별에 대처하지도 못했다"면서 "아일랜드 인권평등 위원회(IHREC)와 아일랜드 올림픽연맹 등에서도 전혀 지원이 없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18개월간 뭉개던 협회를 움직인 건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이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미국의 흑인 체조선수 시몬 바일스는 지난 23일 SNS에 "마음이 아프다. 어떤 스포츠에서도 인종차별은 용납될 수 없다"는 글을 올려 소녀를 응원했다. 다른 체조 선수와 유명인들도 영상을 공유하며 여론을 움직였다. 24일 협회는 소녀의 가족에게 사과의 뜻을 표했지만 제대로 된 사과는 아니었다. "관계자들에게(To whom it concerns)"라고 사과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두 줄짜리 서면 사과였다. 소녀의 어머니는 "인종차별에 대한 언급이 없고 '다음 흑인 아이는 안전할 것'이란 약속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협회는 시상자의 사과도 가로막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시상자는 장문의 사과 편지를 쓰고, 소녀를 직접 만나 사과하고 싶다는 뜻을 협회 측에 전했지만 가족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가족들은 국제체조연맹(FIG) 산하 체조윤리재단에 이 사안을 문제제기할 계획이다. 아일랜드에선 2017년부터 인도계인 리오 버라드커가 총리를 맡고 있지만 인종차별이 종종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1. 지난 20일 오후 5시, 일본 도쿄의 고탄다역 구내의 해산물 판매점 ‘사카나 바카’에선 퇴근길 시민들이 후쿠시마산 생선을 사용한 회와 덮밥 등을 고르고 있었다. 도쿄에 9곳의 점포를 운영하는 이 업체는 이달 8~21일 ‘발견! 후쿠시마 페어’ 이벤트를 개최해 큰 호응을 얻었다. 손님들은 기자에게 “중국이 일본 수산물 수입을 금지해서 응원하려고 왔다”고 말했다. #2. 홋카이도 몬베스시 소재 수산가공업체 ‘마루에이수산’이 보유한 학교 체육관 넓이의 냉동창고엔 가리비가 꽉 차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생산한 총 6,300톤의 가리비 중 60%를 중국에 수출했는데 중국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 중지로 재고가 쌓여 창고 유지비만 늘고 있다. 사장은 마이니치신문에 “올해 매출은 지난해의 10분의 1이 될 듯하다”며 “정부가 보관장소 확보와 판로 확보, 소비 확대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명 ‘처리수’) 방류를 시작한 지 24일로 한 달을 맞았다. 방류 전만 해도 소비자들이 후쿠시마현과 인근 지역 수산물을 기피하는 ‘소문 피해’가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하지만 1개월이 지난 지금, 의외로 후쿠시마가 아닌 홋카이도에서 어업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중국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 중지 여파다. 이날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가리비와 해삼 등 중국 수출 비중이 큰 어종을 잡아 온 홋카이도 어민과 수산업자들은 두 자릿수 비율로 폭락한 가격 탓에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 특히 해삼은 90%가 중국과 홍콩에 수출해 왔기 때문에 아예 사업을 접어야 할 판이다. 홋카이도에서 가리비 등을 중국에 수출하는 거점이었던 하코다테시의 시의회는 지난 19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방류 중단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채택하기도 했다. 반면 후쿠시마에선 소문 피해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방류 전 1개월 후쿠시마산 광어 평균 가격은 kg당 2,339엔, 방류 후 1개월은 2,259엔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1년 전과 비교하면 오히려 올해 10% 넘게 비싸졌다. 도쿄 도요스 수산시장이 지난 7월부터 매주 토요일 개설하는 특설 코너에선 23일 후쿠시마산 광어회 등 생선회 약 50팩이 개점 1시간 반 만에 매진됐다. 역설적이지만 ‘후쿠시마 수산물을 먹어서 응원하자’라는 캠페인의 확산도 중국의 수입 중지가 계기였다. 특히 중국인의 항의 전화가 일본에 빗발친 게 “일방적 괴롭힘”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반중 감정을 자극했다. 람 이매뉴얼 주일본 미국 대사도 후쿠시마 농수산물을 구입하고 중국을 비난하며 “세계에서 중국만 방류에 반대하고 억지를 부린다”는 주장에 동조했다. 산케이신문 등 우익 매체는 방류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 주장이나 언론 보도를 “중국의 괴롭힘에 동조하는 반일적 행위”라고 연일 비난하며 방류 반대 여론마저 위축시켰다. 불안감에 구입이 꺼려지는 일반인도 감히 말하기 힘든 동조 압력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지금의 후쿠시마 응원 분위기가 장기간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지난 11일까지 1차 방류(약 7,800톤)를 마친 도쿄전력은 이르면 이달 말 2차 방류 개시를 위해 배관을 깨끗한 물로 씻어내고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2차 방류 오염수의 방사성 핵종 검사에선 탄소-14, 세슘-147, 코발트-60, 아이오딘-129 등의 방사성 물질이 미량 검출됐으나, 모두 일본 정부의 고시 농도 한도에 크게 못 미쳐 안전하다는 입장이다. 도쿄전력은 방류 후 한 달간 원전 인근 해역에서 실시한 바닷물 및 생선에 대한 삼중수소 검사에서도 이상이 없었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31일 방출구 바로 앞 해역에서 채취한 바닷물에서 리터당 10베크렐의 삼중수소가 검출된 게 가장 높은 수치였다. 하지만 이는 도쿄전력의 방류 중단 기준(원전 3㎞ 이내에서 리터당 700베크렐)을 크게 밑돈다. 도쿄전력은 내년 3월까지 총 4회에 걸쳐 오염수 총 3만1,200톤을 해양에 방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