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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못난이라도 괜찮아"…까다로운 백화점에 입성한 B급 블루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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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못난이라도 괜찮아"…까다로운 백화점에 입성한 B급 블루베리

입력
2024.03.13 18:00
수정
2024.03.13 20:58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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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 블루베리 농가 '밍스팜'
신세계와 A급 이어 B급 상품 거래
"가치 인정 못 받은 농산물 재조명"

11일 경남 김해시 블루베리 농가 '밍스팜'에서 열매를 따고 있는 황유찬(오른쪽) 대표와 그의 아내 유지민씨. 박경담 기자

11일 경남 김해시 블루베리 농가 '밍스팜'에서 열매를 따고 있는 황유찬(오른쪽) 대표와 그의 아내 유지민씨. 박경담 기자


과일 중에서 가장 작은 축이라 겉보기에 비슷한 블루베리도 백화점에 들어가는 건 남다르다. 일반 블루베리보다 크고 단단하며 겉 표면은 매끄러운 A급이다. 반면 A급과 비교해 작고 다소 흠집이 난 블루베리는 백화점에서 따로 취급하지 않았다. 이런 B급 블루베리가 올해 당당히 신세계백화점 진열대에 입성했다. B급 과일의 반전이다.

이 블루베리 생산 농가인 '밍스팜'의 황유찬(42) 대표는 "질 좋은 블루베리 출하가 예년보다 더딘 상황에서 맛은 똑같은 B급 블루베리가 값을 더 받고 백화점에 들어가는 건 큰 도움"이라며 웃었다.

낙동강을 경계로 부산과 마주한 경남 김해시 대동면에서 6년 전 터를 잡은 밍스팜. 찬바람이 막바지 기승을 부리던 11일 그와 가족이 일군 비닐하우스 안은 완연한 봄이었다. 실내 온도 19도로 따듯한 공기 사이에 섞인 향긋한 블루베리 꽃내음이 코를 기분 좋게 자극했다. 가로 100m, 세로 100m 크기인 비닐하우스 16개 동 속 성인 남성 키만 한 블루베리 나무 2,400그루가 뿜어내는 향기였다.

블루베리를 4, 5월에 집중적으로 따는 일반 농가와 달리 이곳에서는 2월 말부터 초여름까지 바삐 수확을 하는데 올해는 유난히 한산했다. 블루베리 나무에는 잘 여문 보랏빛 열매 대신 덜 익은 초록빛 열매가 많았다. 공급량이 적은 초봄에 '프리미엄 상품', 성수기인 늦봄엔 물량 공세로 시장을 공략하는 황 대표의 판매 전략도 차질을 빚었다. 블루베리 1kg 도매가는 초봄(12만 원)이 늦봄(5만5,000원)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



사과·배처럼, 블루베리도 가격 상승


밍스팜이 평소 신세계백화점에 공급하는 크기가 크고 모양이 동그란 A급 블루베리(오른쪽). 왼쪽은 A급보다 작고 흠집이 났지만 맛은 같은 B급 블루베리로 신세계백화점 '언프리티 프레시 행사'에 납품된다. 박경담 기자

밍스팜이 평소 신세계백화점에 공급하는 크기가 크고 모양이 동그란 A급 블루베리(오른쪽). 왼쪽은 A급보다 작고 흠집이 났지만 맛은 같은 B급 블루베리로 신세계백화점 '언프리티 프레시 행사'에 납품된다. 박경담 기자


블루베리 농사는 해마다 12월 수정벌 200마리가 들어 있는 벌통 30개를 비닐하우스에 넣으면서 시작한다. 수정벌 6,000마리가 비닐하우스를 휘저어 꽃을 피우고 나면 밍스팜 대표 품종인 유레카 열매가 맺힌다. 유레카가 저절로 초봄에 맞춰 자라는 건 아니다. 추운 겨울 내내 비닐하우스를 데워야 3월 초 수확할 수 있다. 월 전기료만 약 3,300㎡(1,000평)당 1,000만 원으로 늦봄 수확을 목표로 하는 다른 비닐하우스의 네 배다. 남들보다 빨리 블루베리를 따기 위한 대가다.

밍스팜 블루베리는 크기가 크고 맛도 좋아 A급으로 통한다. 미국, 호주 블루베리 농가를 쫓아다니면서 알맞은 온도, 습도, 수분 조절법을 익힌 게 빛을 발했다. 신세계백화점이 밍스팜 블루베리의 상품성을 알아보고 최상품만 놓이는 백화점 신선식품 코너에 진열한 지 벌써 수년째다.

올해 황 대표가 특히 고민하는 건 가격이다. 고물가로 전기료, 인건비가 크게 올라 비용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들고 있다. 지난겨울 햇볕이 쨍쨍한 날이 드물어 블루베리가 제 때 영글지 못하면서 하루 수확량이 예년의 절반인 50kg 정도다. 본격적인 수확이 미뤄지는 만큼 생산 단가가 뛰었다. 최근 하늘을 뚫을 듯 가격이 치솟은 사과, 배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블루베리도 소비자 가격이 많이 오를 수밖에 없다. 황 대표처럼 3월 초 블루베리 상품을 내놓는 다른 농가도 사정은 비슷하단다.



작고 흠집 나도 맛있다면, 신세계로


신세계백화점이 14~21일 본점, 강남점 등 10개 점포에서 실시하는 '언프리티 프레시 행사' 이미지. 신세계백화점 제공

신세계백화점이 14~21일 본점, 강남점 등 10개 점포에서 실시하는 '언프리티 프레시 행사' 이미지. 신세계백화점 제공


실제 신세계백화점에서 파는 유레카 블루베리 100g 소비자가는 지난해 1만2,000원에서 올해 1만6,000원으로 33.3% 상승했다. 황 대표는 "생산 비용이 두 배 올랐다고 가격을 두 배 높일 순 없다"며 "과일 농가 입장에선 가격이 오르면 소비량이 줄게 되니 반갑지 않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블루베리 발육이 예년보다 느리자 진작에 B급 상품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B급 판매 단가를 높인다면 수확이 지연돼도 버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때마침 A급 상품 거래처인 신세계백화점 상품기획자(MD)의 연락을 받았다. 백화점이 정한 색, 모양, 크기에 미치지 못한 과일을 판매하는 '언프리티 프레시 행사'를 기획하는데 B급 상품도 같이 공급해 줄 수 있냐는 제안이었다. 블루베리 맛만큼은 자신했던 황 대표는 선뜻 승낙했다.

신세계백화점은 블루베리, 설향딸기, 대저토마토 등 과일·채소 11종을 14~21일 본점, 강남점 등 10개 점포에서 판다. 언프리티 프레시 행사에서 만날 수 있는 황 대표의 블루베리 100g 가격은 9,900원(모바일 앱 쿠폰 적용 시)으로 정상가 1만6,000원보다 38%나 싸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상품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과일과 채소를 재조명하는 농산물 구하기 프로젝트"라며 "고객들은 장바구니 물가 부담을 덜고 유통되지 못하는 농산물 처리를 촉진하는 착한 소비도 실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해=글·사진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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