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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서 열린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 공개변론... 기본권 침해 인정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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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서 열린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 공개변론... 기본권 침해 인정될까

입력
2024.04.23 19:20
수정
2024.04.23 19:5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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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아기기후소송 등 4건 병합
2020년 청구 4년만에 첫 변론
청구측 '정부 목표 미흡해 기후위기 못 막아'
정부측 '미래 기본권 침해 예측 판단 어려워'

기후소송 공동 대리인단과 원고 측인 청소년기후소송, 시민기후소송, 아기기후소송 관계자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 첫 공개변론 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부실을 규탄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기후소송 공동 대리인단과 원고 측인 청소년기후소송, 시민기후소송, 아기기후소송 관계자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 첫 공개변론 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부실을 규탄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재판관님, 이 작은 발은 ‘아기기후소송’의 청구인인 태아 ‘딱따구리’가 세상에 태어난 직후 찍은 사진입니다. 이 아이가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기후위기 헌법소원(일명 기후소송)의 청구인 측 대리인인 이병주 법무법인 디라이트 변호사는 모두변론 도중 사진을 가리켰다. 엄마의 손바닥에 놓인 갓난아이의 발을 찍은 것이었다. 2022년 10월생인 청구인 최희우(딱따구리)는 태어나기 네 달 전부터 다른 영유아 61명과 함께 자신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헌법소원에 참여했다. 정부의 탄소감축 목표와 달성 계획이 기후위기로부터 미래 세대를 보호하는 데 충분하지 않아 변경해야 한다는 호소다.

청구인 측 대리인단이 23일 기후소송 공개변론에서 재판부와 청중들에게 보여 준 청구인 희우(태명 딱따구리)의 발. 청구인 측 제공

청구인 측 대리인단이 23일 기후소송 공개변론에서 재판부와 청중들에게 보여 준 청구인 희우(태명 딱따구리)의 발. 청구인 측 제공

이날 헌재는 희우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청소년과 어른들의 헌법소원에 대해 첫 공개변론을 열었다. 2020년 3월 청소년 19명이 국내는 물론 아시아 최초로 기후소송을 제기한 지 4년 1개월 만이다. 시민기후소송(2021년 10월), 탄소중립기본계획 헌법소원(2023년 7월) 등 비슷한 사건도 병합됐다.

헌법소원의 주요 심리 대상은 탄소중립기본법과 기본계획상 명시된 온실가스 감축목표다. 2030년 탄소배출량을 배출 정점인 2018년보다 40% 감축한다는 내용이다. 청구인 측 이치선 법무법인 해우 변호사는 “이 목표가 기후위기를 막기에 미흡해 미래 세대는 물론 현재 세대의 생명권,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이들을 보호할 의무를 다하려면 더욱 강화된 목표를 세워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측 대리인인 김재학 정부법무공단 변호사는 “정부의 목표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권고 범위에 있으며,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고려해 우리나라에 적합한 목표를 세운 것”이라고 반박했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추구하되 각국의 사정에 맞게 이행해야 한다’는 파리협약의 원칙에 따라 목표를 설정했다는 주장이다.

현행법이 기후위기 대응 부담을 미래 세대에 떠넘긴다는 주장도 쟁점이었다. 청구인 측 이병주 변호사는 “현재 계획대로라면 2030년 이전에 우리나라에 허용된 탄소예산을 모두 써버릴 것”이라고 했다. 탄소예산은 IPCC가 제시한 개념으로,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를 넘지 않기 위한 온실가스 배출 상한선이다. 정부 측 정한결 정부법무공단 변호사는 “탄소예산은 국제적 기준일 뿐 각국에 적용되지 않는다”며 “미래에 예측되는 기본권 침해는 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청구인 측은 또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이행을 평가하고 강제할 수단이 없다”고 변론했다. 정부가 2010년 구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 설정한 2020년 감축목표를 지키지 않고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것. 김형두 재판관 등이 정부 측에 “실제로 목표를 지키지 못했나”라고 묻자, 김재학 변호사는 “2020년 목표를 이후 파리협정에 따라 2030년으로 옮긴 것일 뿐”이라고 답변했다.

기후소송 공동 대리인단과 원고 측인 청소년기후소송, 시민기후소송, 아기기후소송 관계자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 첫 공개변론 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부실을 규탄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기후소송 공동 대리인단과 원고 측인 청소년기후소송, 시민기후소송, 아기기후소송 관계자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 첫 공개변론 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부실을 규탄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이날 재판정은 방청객으로 가득찼다. 국내 언론은 물론 외신의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헌재가 내릴 결정이 아시아 등 다른 국가의 법원과 정부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재판부 역시 이를 의식한 듯 기후과학자인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과 안영환 숙명여대 기후환경에너지학과 교수(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온실가스감축분과 위원)를 참고인으로 불러 질문하기도 했다.

헌재는 다음 달 21일 한 차례 더 공개변론을 열기로 했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이 “네덜란드, 아일랜드, 독일 등 여러 나라의 기후소송 판결 관련 양측의 입장과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요구한 만큼, 최종 결정에 해외 사례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릴 경우 탄소중립기본법 개정과 기본계획 수정이 불가피하다. 독일의 경우 2021년 우리나라의 헌재에 해당하는 연방헌법재판소가 기후보호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대폭 조정됐다.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를 감축하려던 당초 목표가 65% 감축으로 강화됐고, 2050년이던 탄소중립 시점은 2045년으로 5년 앞당겨졌다.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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