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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대통령, 지금은 노태우를 닮아야 할 때

입력
2024.04.24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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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회담 앞둔 ‘협치시대’ 선제적 대응해야
87년 전두환-YS 담판 결렬, 역사줄기 바꿔
尹 국민에 용서 구하고, 李 갈수록 몸 낮춰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오후 3시 30분경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전화 통화로 다음 주 적당한 시기에 용산에서 회동할 것을 제안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사진은 2022년 윤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전화 통화하는 모습(왼쪽)과 이 대표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오후 3시 30분경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전화 통화로 다음 주 적당한 시기에 용산에서 회동할 것을 제안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사진은 2022년 윤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전화 통화하는 모습(왼쪽)과 이 대표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뉴스1

4·10 총선 당선이 유력하다고 봤던 여당의 한 수도권 출마자에게 위로차 안부전화를 했다. 허탈함과 분노에 찬 반응이 들려왔다. “박 기자, 내가 불리한 조건에서도 여론조사 흐름도 그렇고 당선을 확신했잖아. ‘아, 지겠구나’ 언제 체감한 줄 알아? 4월 1일 대통령의 의정갈등 대국민담화를 보고 본능적으로 신호가 왔어. 기자회견도 아닌 51분간 일방적 말씀이 끝나자 열혈당원들로부터 휴대폰에 불이 났어. 흥분들 하더라고. 그러니 중도층이나 젊은 층에겐 오죽할까. 사전투표 직전이었는데. 국민을 가르치려 했으니 그 태도가 컸다고 봐. 화난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쏟아진 거야.”

이번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 심판’이란 단일 프레임이 한국사회 다른 어떤 담론도 모두 뒤덮은 초유의 선거였다. 국민 개개인의 이념적 기호나 출신조차 거의 잠재울 정도로 에너지는 강렬하게 폭발했다. 불과 2년간 쌓인 것이다. 민심이 이보다 명확히 의사표현을 하기도 힘들다. “3년은 길다”는 노골적 선거구호가 그 증거다. 우리 국민은 대의기관을 통해 두 차례나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지켜봤다. 그중 한 번은 실제로 헌법재판소를 통과해 국정 최고지도자를 내쫓았다. ‘탄핵’이 금기어로 작용할 법한 데도 선거기간 역풍은 없었다. 윤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초기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25%)보다 낮은 23%(한국갤럽 19일)인 것을 무섭게 긴장해야 정상인 것이다.

정국을 ‘톱다운’ 방식으로 일거에 전환시킬 방법은 영수회담이 유일무이하다. 가장 위급한 환경에서 이뤄진 과거 사례를 용산과 더불어민주당은 엄중하게 대비할 필요가 있다. 민주화 시기인 1987년 6월 24일 전두환 대통령과 김영삼(YS) 통일민주당 총재의 회담은 정치격변의 분수령이었다. 김영삼은 4·13 호헌선언 철폐, 김대중 사면복권, 6·10 항쟁 구속자 석방 등을 요구했다. 전두환은 거부했고 YS는 회담 ‘결렬선언’을 했다. 중대한 길목에서 시위는 격렬하게 살아났고 ‘6·29 항복선언’(대통령직선제 수용)에 이르게 된다. 이때의 극단적 상황까지 정밀하게 검토해 이번 영수회담을 임해야 한다는 얘기다.

1987년 6월 24일 전두환(왼쪽) 대통령과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가 영수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7년 6월 24일 전두환(왼쪽) 대통령과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가 영수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윤 대통령의 국정쇄신 신호는 딱히 없어도 ‘정진석 비서실장’ 인선은 일단 유효한 카드로 보인다. 익명의 비(非)윤계 비영남권 의원은 통화에서 “정 실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명예훼손이란 ‘사법리스크’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야당과 대화가 될, 이 정도 여의도 중진을 찾기 힘들다”고 했다. ‘JP(김종필) 후계자’를 자처하는 경륜이 작동한다면 정국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관건은 차기 총리에 달려 있다. 영남당으로 전락한 여당의 처지나 192석 거대야권의 위력을 감안하면 어떤 조건이어야 할지는 답이 나와 있다. 용산 입장에선 만에 하나 해병대 채 상병,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대통령을 ‘보호’하면서 민주당과 막후 대화가 가능한 고도의 정치력을 갖춘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윤 대통령이다. 국민과 국익, 국격이 달려 있다. 지금은 ‘노태우식’ 협치능력을 선제적으로 갖춰야 한다. 노태우 대통령은 민주화 욕구가 분출하는 격동기를 유연성으로 극복해 나갔다. 한국민의 관성은 늘 ‘권력자’에 냉담하게 돌아선다. 총선 압승 후 몸을 낮추고 있는 이재명 대표는 이를 포착한 것 같다. 국민이 협치 환경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여기서 다시 윤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그 멋진 말을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검찰조직의 영속적 기득권 유지에 충성할 뿐’이란 뜻이 아니었는지 반문하게 된다. 국민을 화나게 했다면 솔직하게 인정하는 상식적 도리를 보이는 게 난국을 돌파할 정공법이 될 것이다.

박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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