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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 친모 상속' 같은 사례 막아야... "부모·자식 유류분도 제한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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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 친모 상속' 같은 사례 막아야... "부모·자식 유류분도 제한 필요성"

입력
2024.04.26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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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유류분 일부 위헌 의미]
장자상속 차별 막으려 도입된 유류분
패륜·불효자 상속 탓에 폐지여론 비등
부모·자식 유류분 제한은 국회 몫으로

가족약탈 관련 ATM 인출 상황. 하상윤 기자

가족약탈 관련 ATM 인출 상황. 하상윤 기자

헌법재판소가 25일 유류분(배우자·자녀·부모·형제 등에게 보장된 최소한의 유산 상속분) 제도에 대해 일부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배경엔 달라진 시대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제도가 민법에 들어온 것은 1977년. 당시는 가부장제와 남아선호 사상이 매우 강했고, 장남 또는 아들에게만 재산을 몰아주는 차별이 존재하던 시절이다. 그래서 대가족이 공동으로 축적한 재산을 피상속인(고인) 마음대로 처분하면, 상속에서 배제된 유족(특히 미성년자 및 여성)의 경제적 삶이 흔들릴 수 있는 문제가 있었다.

이 폐단을 막기 위해 유언보다 더 강력한 '유산 강제할당 제도'를 민법에 도입했는데 그게 바로 유류분 개념이다. 유류분 비율은 △배우자와 직계비속(자녀·손자녀)은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직계존속(부모·조부모)은 3분의 1 △형제자매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 1로 규정됐다.

그러나 다시 시대가 달라졌고, 장자상속 폐해보다는 부모에게 패륜을 거듭했음에도 유류분을 등에 업고 상속권을 인정받는 '불효자 상속권' 문제가 더 커졌다. 카라 멤버인 고 구하라씨의 사례에서 보듯이 장기간 연락을 끊고 자식을 방치한 부모가 유류분을 주장하는 사례도 잇달았다. 게다가 고인과 관계가 나빴는데도 혈연이라는 이유만으로 재산을 물려받거나, 재산 형성에 기여하지 않거나 생전에 고인을 부양하지도 않은 삼촌 또는 고모(고인의 형제자매) 등이 유산을 가져가는 행태에 대한 비판도 불거졌다. 이런 세태에 대한 여론의 분노와 문제의식이 헌재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47년 전 시작된 유류분 제도가 달라진 사회제도와 걸맞지 않는다는 점은 관련 재판 통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2013년 663건이던 유류분 반환 소송은 2022년 1,872건으로 대폭 늘었다. 분쟁은 늘었지만, 민법 자체가 개정되지 않은 채 유지되다 보니 대법원도 기본권을 소극적으로 구제하는 판결만 냈다. 결국 법관이 2020년 처음으로 유류분 제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헌재에 제청했고, 법무부도 이듬해 유류분 대상에서 형제자매를 제외하는 민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기에 이르렀다. 헌재는 지금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유류분 제도를 합헌으로 봤지만, 이번엔 이런 시대적 변화를 수용해 위헌·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상속 전문인 노종언 변호사는 "저성장 시대가 지속되고 유산이 재산을 증식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여지면서, 유류분과 관련한 다툼이 격렬해졌고 그 과정에서 형평과 정의에 어긋난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이날 헌재 결정으로 (고인 상속재산에 대한 상속인들의) 기여분과 패륜 등에 대한 입증을 해야 하므로 소송이 다소 복잡해지긴 하겠지만 기본권을 지킬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진일보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헌재가 △무조건 유류분을 요구할 권리 △유류분 산정 시 부양 등 기여분을 인정하지 않는 것까지 문제 삼아, 이에 대한 국회의 법 개정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국회가 헌재의 결정 취지를 반영해 시대에 맞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민법의 대가로 꼽히는 윤진수 서울대 명예교수는 "유류분 제도는 만들어진 지 오래됐고 치밀하게 설계되지도 않았다"며 "국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조항 개정에만 머무르지 말고, 합헌은 나왔지만 반대의견이 나온 조항이 실무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까지 반영해 법을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헌재는 이날 당사자들이 다른 상속인의 유류분에 악영향을 미치는 걸 알면서도 증여한 경우 시기를 불문하고 증여한 재산을 '반환할 유류분'에 포함시키는 조항을,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합헌 결정하는 등 나머지 유류분 조항은 합헌으로 판단했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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