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이제 차별 피해 어디다 호소하죠?"... 인권조례 폐지 걱정하는 학생들

알림

"이제 차별 피해 어디다 호소하죠?"... 인권조례 폐지 걱정하는 학생들

입력
2024.05.03 04:30
11면
0 0

충남·서울 '학생인권조례' 잇따라 폐지
학생, 인권침해 구제 어려워질까 우려
교권 보호 위한 조례 폐지는 어불성설

지난해 2월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로부터 김도헌군이 받은 처리결과 통지서. 통지서에는 학교가 종교 행사에 참여할 것을 강요함으로써 학생들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군 제공

지난해 2월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로부터 김도헌군이 받은 처리결과 통지서. 통지서에는 학교가 종교 행사에 참여할 것을 강요함으로써 학생들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군 제공

"이제 어디에다 말해야 할지 막막하네요."

서울의 한 고교에 재학 중인 김도헌(16)군은 2022년 중학생 시절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당시 김군은 정규교과 시간에 종교행사 참여를 강제하는 학교 측 처사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에 구제 신청을 했다. 그가 시교육청 문까지 두드린 건 학교 측에 불참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지만 매번 무시당한 탓이다.

센터 측은 지난해 2월 "특별한 사전동의 절차 없이 종교행사를 진행하며 대체 과목을 개설하지 않은 것은 학생인권조례에서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 침해 소지가 있다"며 학교 측에 시정을 권고했다. 김군은 2일 "학생인권조례는 '권고'에 그쳐도 다양한 인권침해 사례의 기준이 된다"며 "조례가 없어지면 이마저도 못할까 봐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서울시의회가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의결하면서 '학생 인권' 이슈가 다시 여론의 중심에 섰다. 최근 '교권' 강화 분위기가 커진 것이 기폭제가 됐다. 시의회도 같은 논리로 조례 폐지를 밀어붙였다. 교권 침해가 늘어난 원인을 인권조례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학교 주체 각자의 권리 보장은 어느 한쪽의 희생을 담보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차별, 폭력 등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방어막은 유지돼야 과거의 악습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란 호소다.

학생들 "최소 보호장치 사라지는 것"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23회 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이 가결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23회 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이 가결되고 있다. 뉴스1

학생인권조례는 교육현장에서 학생 인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치법규다.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7개 교육청에서 제정됐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안전할 권리 △사생활의 자유 등 크게 10개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인권침해 시 조사 및 처리에 관한 내용도 들어있다.

조례 폐지의 후폭풍은 당장 '학생인권지원기구'에 미칠 수 있다. 조례 시행과 함께 각 교육청에 설치된 인권기구는 인권침해가 발생할 경우 상담·조사 역할을 한다. 고교생 안병석(16)군은 "얼마 전 학교에서 골프채로 체벌을 받고 시교육청 인권옹호관에게 자문을 했는데, 조례가 없어지면 인권침해 사례를 조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발, 복장 등 교육현장의 오랜 쟁점을 두고 다시 논쟁이 불붙어 갈등을 부추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운동부에 소속된 김서아(15)양은 "조례가 보호하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 조항 덕분에 운동부 선후배 간 차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선 조례 폐지 나흘째인 지난달 30일, 교원들에게 '용의 복장 지도계획'이 내려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학생의 복장, 두발 등 용모 규제는 조례에서 금지하는 사안이다.

"학생 인권과 교권, 배치되지 않아"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무엇보다 인권조례와 교권 하락 사이의 상관관계가 있는지부터 불분명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발행한 '학생인권조례 바로 알기 안내서'를 보면, 2017~2021년 조례가 제정된 지역(평균 0.5건)과 그렇지 않은 지역 간(0.53건)의 '교원 100명당 교육활동 침해 건수' 차이는 평균 0.03건에 불과했다. 게다가 교육부는 지난해 9월 지도에 불응하는 학생에게 경고 및 훈육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학생생활지도 고시'도 발표했다.

교권 침해의 이유를 애먼 인권조례에서 찾는다는 교사들의 비판도 많다. 서울의 한 고교에서 근무하는 조영선 교사는 "학생이 조례를 앞세워 교사를 공격하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며 "인권침해 구제는 대개 학교 측을 상대로 이뤄져 교사가 불이익을 당한 사례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교사 1,478명은 1일 낸 성명에서 "교사들이 원하는 건 교육의 회복이지 학생인권조례의 폐지가 아니다"라고 규탄하기도 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인권조례 폐지와 관련해 이달 중순까지 시의회에 재의를 요구할 계획이다. 시민단체 '학생인권법과 청소년 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의 박지연 활동가는 "다른 지역에서도 조례 폐지 논의가 오가는 것으로 들었다"면서 "헌법 등에서 언급된 기본 권리가 지역 구분 없이 모든 교육현장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학생인권법 제정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연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