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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조 이혼 판결' 결정적 장면들… ①김옥숙 메모 ②300억 어음 ③집요한 재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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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조 이혼 판결' 결정적 장면들… ①김옥숙 메모 ②300억 어음 ③집요한 재판부

입력
2024.05.31 14:59
수정
2024.05.3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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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vs 노소영 항소심 이모저모]
노태우→최종현 300억 비자금 등장
김옥숙의 메모가 비자금 존재 뒷받침
재판부의 이례적인 적극성에도 주목

서울고법 가사2부는 30일 최태원(왼쪽사진)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원고(최 회장)가 피고(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 원, 재산분할로 1조3,808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사진은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나란히 출석하는 최 회장과 노 관장. 연합뉴스

서울고법 가사2부는 30일 최태원(왼쪽사진)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원고(최 회장)가 피고(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 원, 재산분할로 1조3,808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사진은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나란히 출석하는 최 회장과 노 관장. 연합뉴스

재산분할 1조3,808억 원위자료 20억 원. 30일 서울고법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판결에서 책정한 액수는 '국내 이혼 소송 사상 최대 금액'이었다.

1심(재산분할 665억 원+위자료 1억 원)과 비교해도 약 20배에 달하는 차이. 항소심 재판은 1심과 무엇을 다르게 봤기에 이렇게 천문학적인 액수를 재산분할액으로 봤던 것일까. 항소심 법원 판단에 나타난 인정사실을 중심으로 '세기의 이혼재판'이 '세기의 재산분할'로 갈 수 있었던 원인을 짚어봤다.

①비자금 300억 원 '증표' 어음 6장

노태우 전 대통령 딸 노소영(오른쪽)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과거 행사에 함께 나왔을 당시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태우 전 대통령 딸 노소영(오른쪽)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과거 행사에 함께 나왔을 당시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심 재판부 1심과 다르게 본 배경엔 노 관장의 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있다. 2심 재판 과정에서 노 관장 측은 총액 300억 원의 약속 어음 6장(장당 50억 원)을 증거로 제시했다. 1991년 노 전 대통령이 최 회장의 부친 최종현 전 회장에게 300억 원 상당의 금전적 지원을 했고, 그에 대한 약속어음을 노 전 대통령 측에 교부한 것으로 봤다. 2012년 2장은 SK그룹에 교부했지만, 나머지 4장은 노 전 대통령 배우자인 김옥숙 여사가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양측은 약속 어음의 존재는 인정했지만, 교부 경위에 대한 입장이 엇갈렸다. 노 전 관장 측은 '돈이 넘어간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비자금이 선경그룹이 태평양증권(현 SK증권)을 인수하는 데 쓰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최 회장 측은 돈을 받은 게 아니라 '미래의 약속을 위한 증표'라고 반박했다. 최 회장 측은 "최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활동비 등을 요구하는 경우 이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②300억 뒷받침한 김옥숙 메모

재판부는 이 돈의 성격과 출처를 명확히 규정하진 않았지만 노 관장 측 의견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1991년 기준으로 볼 때 300억 원이 불법적인 돈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특히 이 과정에선 '김옥숙 메모'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 여사는 1998년 4월과 1999년 2월, 노 전 대통령이 조성한 비자금에 대한 메모를 적었다. 메모에는 이름과 숫자들이 적혀 있었는데, 그중엔 '선경 300억 원'이라 적힌 대목은 두 메모에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재판부는 이 메모 속 다른 부분에 적시된 대로 노재우(노태우 동생)씨에게 120억 원, 사돈인 신명수 신동방그룹 회장에게 230억 원 등을 제공한 사실이 수사와 재판에서 각각 인정된 부분들을 들어, 메모 자체에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③28차례 석명 요구한 김시철 부장판사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종현 전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종현 전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번 판결이 나오면서 서울고법 가사2부를 이끄는 김시철 부장판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지난해 6월 가사2부에선 이혼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유책 배우자가 상대방에 2억 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단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재판부는 "혼인의 순결과 일부일처제도 등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고 판시해 눈길을 끌었다.

통상 가사사건 재판은 재판부의 직권주의(소송의 주도권을 법원이 쥐는 것)가 가미된다. 검사에게 입증 책임이 주어지고, 법원은 검사와 피고인이 제출한 증거만으로 판단하는 형사사건과는 차이가 있는 지점이다. 달리 말하면 심리 과정에서 재판부가 실체 규명을 위해서 주도적으로 직권 탐지(법원이 소송 당사자의 주장이나 청구에 구속받지 않고 직권으로 증거를 수집·조사하는 것)를 조금 더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이혼 관련 항소심 변론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며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이혼 관련 항소심 변론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며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실제로 김 부장판사는 항소심 진행 과정에서 양측에 28차례나 석명(소송관계를 명료하게 하려 재판장이 사실상·법률상의 사항에 관해 설명하도록 하거나 입증을 촉구하는 권한)을 요구하기도 했다. 특히나 항소심에서 28차례의 석명 요구는 이례적이어서, 사실상 재판부가 1심과 다른 판단을 할 수도 있을 거란 관측이 법조계에선 제기돼 왔다. 경우에 따라 명백한 증거가 없을 수도 있는 가사 사건의 특성상 통상 재판부가 자세히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데에 반해, 김 부장판사는 약 50분에 걸쳐 구체적 판단 이유를 상세히 설시했는데, 이 역시 이례적이란 평가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법정다툼은 이혼 사건 외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노 관장의 미술관을 상대로 "SK빌딩에서 나가달라"며 낸 부동산 인도 청구 소송의 1심 결론은 다음 달 21일 나온다. 퇴거 요구 부동산은 아트센터 나비가 입주한 SK그룹 본사 서린빌딩 4층이다. 아트센터 나비는 2000년 12월에 이곳에 개관했다.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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